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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 2월 14일은 종교인 안중근의 사형선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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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1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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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2월 14일은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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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문화는 아니고 고대 로마에서 유래된 날이라고 합니다. 



밸런타인데이가 시작된 서구에서는 그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돈에 눈이 먼 기업이 얄팍한 상술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는 날이 되어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는 불과 30여 년 전 일본의 천박한 자본주의 상술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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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을 지낸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 110주년이 되는 해이며, 3.1만세 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894년 동학 혁명군 30만 명 대학살과 1895년 조선의 국모(대한제국 선포 후 명성황후로 추존)를 무참히 살해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잔인무도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분개한 항일 의병이 일어났고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이 들어갔습니다.


1905년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 을사5적과 이토 히로부미는 총칼로 고종황제를 위협했지만, 황제의 동의도 없고 국새도 찍히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체결한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무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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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강압적인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고, 1906년 조선 통감부 설치,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등 사실상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1910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한일병탄이 이뤄진 해이지만, 사실상 1905년 을사늑약부터 한일병탄이 시작된 것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이후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인도되었습니다.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일본 관동도독부 검찰관 미조부치타카오에게 신문을 받습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 15가지를 말하는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을 가장 큰 이유는 대한의 독립과 동양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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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을 당시부터 2월 14일 사형선고일 이후에도 줄곧 민간인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뤼순 감옥으로 압송하기 위한 열차가 1909년 11월 1일 하얼빈역에서 출발해 11월 3일 뤼순(여순)감옥에 도착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3일부터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1910년 3일 26일까지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1910년 2월 7일 1차 공판이 있었고, 재판장과 검찰관, 그리고 일본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관선변호사 역시 일본인이었습니다.


2월 7일부터 12일까지 여섯 차례가 열렸고, 2월 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조국의 자주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당당하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라고 말했습니다. 항일 의병부대 대한의군은 총독 이범윤, 총대장 유인석, 대장 전제덕과 김영선, 좌영장 엄인섭이며, 우영장이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몇 년 전 이태룡 의병연구소장은 유인석 총대장의 아들 유해동 선생이 쓴 <의암류선생약사> 내용을 근거로 연해주지역 의병연합조직인 13도의군이 1910년 6월 조직된 것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기 전이었던 1909년 6월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정된 관선변호사지만, 그나마 안중근 의사를 위한 최소한의 변론마저도 무시된 채 1910년 2월 14일 중국 뤼순에 있던 일본 관동도독부(關東都督府) 지방재판소에서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혐의로 일본 형법을 적용해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며,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은 3월 26일입니다.


1910년 3월 26일 아침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 아침 뤼순 감옥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에게 글 한 점을 남겨 주었습니다.



뤼순 감옥에 갇혀있던 안중근 의사의 담당 간수는 치바 도시치로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안중근 의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애국심과 확고한 신념, 당당한 의기와 인품에 감동하여 평생 존경하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중근 의사를 위해 명복을 빌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1910년 2월 14일 일본 제국주의 고등법원이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날입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인 2월 14일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밸런타인데이가 점령해버렸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중근 의사의 거룩한 삶과 넋을 기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면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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