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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명예이사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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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흥준 작성일 19-01-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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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한국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이 지난 1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 입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인연을 맺은 뒤 종교, 언론,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가정연합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와 고인의 인연은 특별했다. 육군사관학교 2기로 미국 군사학교를 수료하며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춘 그는 1970년대 가정연합이 미국에서 교세를 넓혀가던 시절, 문 총재의 연설을 통역하며 문 총재와 신자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1971∼1994년에는 문 총재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다. 고인의 딸인 훈숙씨는 정혼자인 문 총재 차남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영혼결혼식을 올려 문 총재와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고인은 가정연합 대북사업의 토대를 닦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91년 문 총재와 한학자 총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 수행했고, 김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조문을 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당시 남한에서는 정부든 민간이든 조문을 가지 않았다.

  


1994년 남한에서는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북한에 조문을 가지 않았다. 통일교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과 이야기가 다 된 상태에서 갔는데, 보수적인 언론에서 ‘박보희씨 방북’을 하도 비판적으로 보도하니까 정부가 귀국을 막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고인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서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 때가 돼서야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정연합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일하면서 언론, 문화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자유아세아방송 사무총장(1966), 세계언론인협회 회장(1978∼1995), 미국 워싱턴타임스 회장(1982∼1997) 등을 역임했고, 1991∼1994년에는 세계일보 사장 겸 발행인을 지냈다. 


문화 분야에서는 세계 각국을 돌며 오랫동안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해온 리틀엔젤스예술단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이 1965∼1978년 11차에 걸쳐 40개국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을 지휘했다. 리틀엔젤스예술학교(현재의 선화예술학교) 교장을 지냈고, 유니버설발레단 창단을 이끌기도 했다. 



고인이 한때 미국에서 ‘청문회 스타’로 주목을 받은 일은 유명하다. 중앙정보부가 재미사업가 박동선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에게 로비활동을 펼친 사실이 알려져 한·미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넣은 ‘코리아 게이트’(‘박동선 사건’)가 1976년 불거졌고, 고인은 이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돼 2년 뒤 미 하원에 출석해 증언을 해야 했다. 스파이 혐의를 받았으나 조사를 맡은 위원회의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에게 공격을 퍼붓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공개 증언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의 증언을 저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발간했다.


유족으로는 문훈숙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성화식은 15일 오전 8시 서울 용산 천복궁교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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