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영상포교 펼치는 선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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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1 | 작성일 | 15-10-02 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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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사진으로 바라본 구도의 세계
카메라를 도반 삼은 구도의 길 40년
사진을 통해 본 불가에 대해 설명하는 선암 스님 |
사진을 통해 불교를 국내외에 알리는 스님이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 봉원사 주지 선암 스님은 40년 넘게 카메라를 도반 삼아 전국을 누볐다. 사진 작업은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출가에서 다비까지, 불교 수행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은 불교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선암 스님을 통해 카메라에 비친 불교문화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 출가 동기는
스님이 된 것은 주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부친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하셨고 동생은 홍역으로 잃었다. 모든 사람들이 힘들어하던 시절, 어머니는 일곱 살 된 나를 신촌 봉원사에 맡기셨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봉원사 스님들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1964년 운파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73년 국묵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 사진을 하게 된 동기는
사진을 하게 된 것은 그림에서 출발했다. 중1 때 친구와 함께 미술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이 사진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격적으로 사진의 매력에 빠진 것은 군 생활을 통해서다. 1967년 10월 공군에 입대했다. 대방동 공군본부 헌병대 면회실에 근무했는데 옆 사무실이 정훈감실이었다. 정훈감실은 기자들에게 사진 자료들을 배포하는 등 공군 홍보가 업무였다. 정훈감실을 들락거리며 인화지를 처음 알았다. 정훈감실에는 암실이 있었다. 수시로 암실에 들어가 사진 작업을 도우며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포교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공군에서 제대 후 처음으로 코비카라는 사진기를 구입했고 이어서 야시카라는 사진기도 구입했다. 72년 보시한다는 마음으로 월간 불교에서 사진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것저것 찍어 대기 시작했다. 75년 사진 현상소에 붙은 공모전 포스터를 보고 작품을 출품했는데 덜컥 입상했다. 부상으로 찬합을 받았다. 부상으로 받은 찬합을 보며 사진도 잘만 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사진이 좋아 사진을 찍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87년 정식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에 사진작가로 등록했다.
- 스님 신분으로서의 장점은
신분이 스님이기 때문에 주로 불가의 모습을 담는다. 남들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지만 나는 안에서 밖을 담는다. 섬세한 부분을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처님 오신 날 거리 행진 시, 일반인들은 행렬 속으로 들어올 수 없지만 스님인 나는 행렬 속에서 다양한 표정을 잡을 수 있다. 사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의 변화나, 각종 행사 등을 담을 수 있어 나만의 특징을 살린 사진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주로 다루는 주제는
불교 하면 연꽃이 연상되는 것처럼 처음에는 연꽃을 많이 찍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꽃송이가 크고 화려한 연꽃은 없었다. 당시에는 농부들이 연근을 크게 키워 시장에 내다 팔 목적으로 연을 재배하기 때문에 꽃은 볼품이 없었다. 작품이 될 만한 연꽃이 있다는 정보를 들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녔다. 이슬을 담은 활짝 핀 연꽃, 잠자리, 벌 등이 살포시 내려앉은 연꽃 등 다양한 연의 세계를 담았다.
다양한 색상의 연꽃이 있다는 중국 무안에 가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찍기도 했다. 전국의 연꽃이 있다는 곳은 안 다녀온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제는 언론 매체에서 연꽃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나에게 문의를 해온다. 매년 연꽃 축제가 열리는 봉원사 연꽃도 처음 150개를 시작으로 출발해 현재는 700개로 많아졌다. 이제는 봉원사 연꽃 축제는 도심에서 연을 즐길 수 있는 봉원사의 아이콘이 됐다.
달력 만드는 계절이 오면 달력 제작사에서 달력에 사용할 연꽃 사진을 찾는데, 사용료로 받은 돈으로 사진기 등 사진 작업에 쓸 장비 마련에 큰 도움이 됐다.
서편제 촬영지인 영광 법성포 인근 고목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 이 작품을 얻기까지 9년의 기다림이 있었다. 선암 스님 제공 |
-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사진은 한 컷을 앵글에 담는 찰나의 작업이지만 9년, 20년 걸쳐 찍는 것도 있다. 오메가 일출을 앵글에 담기 위해 강원도 주문진을 매년 방문했지만 마음에 흡족한 것을 찍지 못하다가 20여년 만에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얻었다. 일출은 하지와 동지 사이에 찍어야 제대로 된 오메가 일출을 얻을 수 있다. 일출만 달랑 찍기보다는 방파제, 어선 등이 함께하는 일출 광경을 찍는다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영화 서편제에 나왔던 청산도 고목을 배경으로 한 일몰 사진은 카메라에 담기까지는 9년의 기다림이 있었다. 10여년 동안 세계무용콩쿨대회 참가자들의 예선, 결승전 춤사위를 담는 작업을 할 때는 하루에 1만 번의 셔터를 눌러댄다. 이는 32기가 메모리칩 2개씩을 사용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보통 사람은 1천 번 누르기도 힘들다.
2004년 한국광관공사가 국내외 홍보용으로 사용할 사진 콘테스트에 응모,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외국인 승려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2박3일의 사찰 순례에 함께 참석했다가 화순 은주사에서 탑을 배경으로 3명의 외국인 스님들이 가부좌를 틀고 수행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6년 동안 전통문화를 다루는 인간문화재 60여명의 작품 작업을 앵글에 담아 기록으로 남겼으며 사찰의 일주문만을 담은 사진은 불교 관련 잡지의 표지로 선보였다. 최근에는 급속하게 사라져 가는 정자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출가에서 다비에 이르는 불교 수행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사진집은 일반인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일본 국립극장에 영산재를 올렸다는데
1999년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사 PD가 일본 국립극장 관계자들이 무대에 올릴 작품을 위해 강릉 단오제를 보러 왔는데, 단오제는 무대에 올리기가 곤란하다며 봉원사 영산재 시연을 부탁해 왔다. 영산재 시연을 본 일본 국립극장 관계자들이 영산재를 일본 국립극장에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준비하는 데만 5년 걸렸다. 우리 상식으로는 1년 정도만 준비하면 무대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글자 하나만 이상해도 사람을 보내 그 뜻을 묻곤 했다.
일본 국립극장은 일본 것 외에는 올릴 수 없는데 2시간 공연 중 처음 30분은 일본 스님이 나와서 자기들의 공연을 하고 1시간30분은 영산재를 올리기로 했다. 일본 측 공연은 조용하고 정적인 데 반해 영산재는 바라춤을 추는 등 역동적이었다. 영산재가 무대에 오르자 눈이 휘둥그레 하던 일본인들이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이 끝나자 뉴욕 공연 요청이 들어와 일본 문화원 초청으로 5차례에 걸친 뉴욕 공연을 했고 이어 프랑스 3개 도시 순회공연과 벨기에 브뤼셀공연까지 이어졌다.
- 좌우명이 있다면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직한 삶을 알려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생선 싼 종이는 생선 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는 향내를 낸다.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진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지만 사찰에 신세를 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하룻밤 신세 지는 곳은 선암사가 유일하다. 그곳은 30여년 동안 다닌 곳이기 때문에 나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작년에 봉원사 주지가 됐다. 군대생활을 제외하고 봉원사를 떠난 적이 없다. 주지로 있는 동안에 봉원사를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쓰고 싶다. 봉원사의 영산재는 스님이나 일반인 누구나 참여해 배울 수 있다. 조계종 스님들도 영산재를 배울 수 있다. 봉원사의 상징인 영산재는 72년부터 사진 기록물로 만들었다. 영산재를 해외에 알리는 일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태고종 봉원사 42대 주지 선암 스님은 한국사진작가협회 창작분과위원장과 이사를 역임했으며 일본 아사이신문 제50회 국제사진공모전, 한국사진대전, 제물포사진대전, 서울특별시 사진대전 등 각종 공모전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외에서 16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는 월간불교, 한국불교신문사 사진부장, 일본관광신문사 고문, 한국 불교사진연합회 고문, 현대미전 초대작가,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 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집 및 저서로는 ‘영산재’, ‘빚깔있는 책’, ‘연화전’, ‘불교무용’, ‘부처의 미소’, ‘우리춤’, ‘출가’, ‘범패와 작무법’ 등 다수가 있다.
정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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